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퐁파두르 부인 (문단 편집) == 특기사항 == 그 당시 사람 치고는 [[https://m.blog.naver.com/PostView.nhn?blogId=ladyaurora&logNo=70147671707&proxyReferer=https%3A%2F%2Fwww.google.co.kr%2F|초상화가 매우 많았다]]. 잘 알려진 문서 최상단의 [[초상화]]를 포함해 초상화가 4점이 넘어간다. 그 중에서도 장 부셰라는 화가가 그린 청록색 [[드레스]]를 입은 초상화(문서 상단 초상화)가 대중에겐 가장 잘 알려져있다. 참고로 부셰는 유독 퐁파두르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. 그가 그린 12점의 초상화 중 무려 8점이 퐁파두르의 초상화일 정도. 더 의외인건 사실 부셰는 초상화 전문 화가도 아니었다. 그렇지만 퐁파두르의 초상화를 많이 그린 덕분인지 퐁파두르도 부셰를 좋아했다고. 생전엔 [[독서]]를 좋아했다고 하며, 초상화에서도 독서를 하는 장면으로 많이 그려졌다. 다만 본인이 독서를 좋아한 것 외에도 그 당시 [[화가]]들 사이에서 '벨 사방(미모의 지식인 여성)' 컨셉으로 여성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유행을 타기도 했던 것도 있었고, 독서하는 모습이 강조된 초상화들과 그 초상화들의 배경에 놓인 주변 사물들은 그녀의 지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다고도 한다. 사실 이런 기법은 그 당시 다른 귀족들의 초상화에도 쓰였다는 모양. 다만 퐁파두르 부인의 경우 마냥 허세라 하기 뭣한 것이, 그녀는 왕의 눈에 들기 위해 입궁하기 전부터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해[* 무려 음악, 미술, 춤과 예법, 수학, 역사학, 지리학, 각국의 언어, 시문학, 철학 등 다방면으로 교육받았다.] 왕의 눈에 들 만큼 지식과 교양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. 위에서도 나와 있지만, 저 시대에 왕의 정식 정부(애첩)은 그냥 미모만 좋다고 해선 절대로 될 수 없었으며 신분과 교양, 지성, 외모 등등 많은 조건들이 다 갖춰져야 가능했다. 퐁파두르 부인이 왕의 정부가 되기 위해 괜히 피눈물 날 정도로(?) 노력하고 자기 신분을 뒷받침해줄 발판용 남편을 구해 1차로 결혼한 게 아닌 셈이다. 사후 소장하고 있던 예술품을 정리하는 데에만 1년이 걸렸을 정도로 예술광이기도 했다. 보통 문화-예술 후원에 대해 오해할 수 있지만, 대부분은 '''그녀의 사비를 털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.''' 워낙 자선사업을 많이 하기도 했고. 그 덕에 그녀가 죽었을 때 남겨진 전재산은 오페라좌의 고급 좌석을 예매하는 데 드는 비용만도 못했다고 한다. 뭐 왕의 정부니까 이런저런 이권도 많이 챙길 수 있었고 사업에서도 비교도 되지 않은 신용과 유리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사업들 자체도 그녀가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. 퐁파두르는 대부분의 재산을 [[루이 15세]] 앞으로 남겼고, 나머지 재산은 남동생 아벨과 친구들에게 물려줬다. [[프랑스]] 곳곳에 있던 퐁파두르 명의로 된 저택은 생전에 자금을 마련하려고 매각하거나 사후 다른 용도로 바뀌거나, [[프랑스 혁명]] 때 파괴되었고, [[엘리제 궁전]]은 [[프랑스 대통령]] 관저가 되었다.[* 참고자료: 권력과 욕망 164~166페이지 및 244~247페이지.] [[냉(점액)|냉]]이 심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날의 유럽식 [[비데]]를 만들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